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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박스(괴담 등)

운명 도둑 2(공포썰, 괴담, 미스터리 소설)

by 역발상 2025.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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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장님에게 물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뒤집어씌우는 건데요?"

 

 

사장님은 망설였다. 그러더니 "나는 무당은 아니지만"이라고 어물거리더니 말했다.

.

 

"대상을 한 명 잡고 내가 할 만한 행동을 그 사람한테 하게 하는 거죠. 구직 중이면 내가 들어가고 싶은 회사에 친구를 지원하게 한다든가, 그 친구 자소서도 내가 대신 써주면 좋고. 100일 정도 하면 완전히 뒤집어씌울 수 있죠."

 

 

구직 중이라는 말은 하지도 않았는데 사장님은 콕 집어 그렇게 얘기했다. 하지만 친구에게 내 도둑수를 뒤집어씌울 수는 없었다.

 

 

"운을 써버리는 건 어떻게 하는 건데요?"

 

 

사장님은 대답을 하려다 말고 고통스러운 듯 자기 양팔을 잡았다. 괜찮으냐고 물었지만 사장님은 대답조차 못 할 정도로 고통스러워했다. 사장님은 양팔을 잡고 한참 동안 숨을 헐떡였다. 잠시 후, 사장님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말했다.

 

 

"내일부터 가게에 나와요."

 

 

사장님은 쌀국숫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라고 했다. 무언가를 빼앗기는 것과 주는 건 사실상 같은 것이라며 도둑수를 베풂으로 풀어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손님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가끔 덤도 주면 안 좋은 운을 어떻게든 상쇄할 수 있을 거라고. 나는 어차피 할 일이 없었으니 그러겠노라고 말했다.

 

 

쌀국숫집은 상상 이상으로 바빴다. 입소문을 타고 나날이 손님이 더 몰려왔기 때문에 한겨울에 반팔을 입어도 땀이 삐질삐질 났다. 게다가 수많은 실수, 포스기도 잘 못 만지고, 국수도 엎고, 1번 테이블에 갖다줘야 할 메뉴를 4번 테이블에 놓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일주일 정도 지나니 일은 익숙해졌다. 나는 손님들에게 음식을 가져다주고, 좋은 하루를 보내라고 인사했다. 자주 오는 손님에게는 콜라도 서비스로 드리고, 잘 먹는 청소년에게는 밥을 서비스로 주기도 했다. 때로 포춘쿠키를 대신 뽑아달라고 하는 손님들도 꽤 있었다. 나는 좋은 일이 생기기를 기도하며 포춘쿠키를 뽑아줬다. 좋은 점괘가 나오면 우리는 함께 기뻐했다. 안 좋은 점괘가 나와 시무룩한 사람에게는 콜라를 서비스로 주었다. 그리고 사장님이 내게 말해준 '베풂'에 관해 이야기하며 이런 식으로 운을 소거해 보라고 설명했다. 손님들은 콜라값을 자기가 내겠다고 했지만 나는 이래야 내 운이 소거되므로 괜찮다고 했다. 그러면 그들은 나중에 가게에 와서 내게 선물을 주고 돌아갔다. 그즈음, 나는 깨달았다. 매일 나를 덮치던 불행이 언젠가부터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오히려 행운이 내게 오고 있다는 사실을.

 

 

그것을 깨달은 후로 나는 완전히 변했다. 지인들을 집에 불러서 쓰지 않는 물건들을 나누어 주었다. 지인들이 가져가지 않은 물건은 당근에 팔았다. 입지 않는 옷, 가구 등 많은 걸 기부했다. 현금은 최소한만 남기고 모두 적금으로 묶어두었다. 창구에 가서 해지하지 않는 한 절대 찾을 수 없도록 설정해 놓았다. 그로부터 며칠 후, 나는 지인에게서 돈을 빌려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운용할 수 있는 현금이 없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완전한 해방감을 느겼다. 도둑수가 든다 해도 잃을 것이 없는 간소한 삶. 내가 두려워할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내일 주방 배수구 좀 손봐야 해서. 하루 쉬고 31일에 출근하자."

 

 

가게 문을 닫고 청소를 하는데 사장님이 달력에 동그라미를 치며 말했다. 어느덧 이 가게에서 일하고 두 계절이나 지났다. 그간 많은 일이 있었다. 나는 바쁠 때는 주방에도 들어가는 올라운더가 되었고, SNS에서도 유명해졌다. 나는 손님들에게 황금손으로 불렸다. 저 알바생이 점괘를 아주 잘 뽑는다는 소문이 퍼지며 나를 찾는 손님들이 늘었다. 물론 사장님에게서 인센티브를 잔뜩 받았지만 손님이 점점 들어 요즘 꽤 피곤했다. 그런데 내일 하루 휴무라니. 단비 같은 소식에 나는 웃었다. 사장님도 나 못지 않게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늘 얼굴에 그늘이 져 있었는데. 나는 사장님에게 물었다.

 

 

"사장님,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내일 아무도 안 만나잖아."

 

 

사장님은 팔을 주무르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장사가 잘돼도 무례한 손님들은 계속 불쑥 찾아오곤 했다.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여기가 유명한 무당집이냐고 묻는 사람, 국수는 됐고 돈 술 테니 사장 좀 불러달라는 사람. 여기는 점집이 아니라고 말하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지 않아도 되니 기분이 좋겠지. 늘 팔이 저리다고 하셨으니 물리치료도 받을 수 있고 말이다.

 

 

다음 날, 나는 몸이 천근만근이 되어 눈을 떴다. 어제는 평소보다 손님이 더 많이 와서 일을 더 많이 하긴 했다. 하지만 이렇게 몸이 안 좋아질 줄이야. 몸살에라도 걸렸는지 몸이 무거워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나는 이불속에서 잠들었다가 깨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허무하게로 하루를 날려버리고 말닸다.

 

 

전날 온종일 쉬었지만 몸은 전혀 낫지 않았다. 오히려 어제보다 더 피곤하고 몸이 무거웠다. 오늘 하루 쉴까 고민했지만 내가 출근하지 않으면 사장님은 온종일 혼자 일해야 한다. 나는 뜨거운 물로 오랫동안 샤워하고 가게로 향했다.

 

 

평소라면 사장님은 나보다 먼저 출근해 재료를 손질하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오늘따라 가게 불은 꺼져 있었고 안에 있는 테이블은 모두 밖에 나와 널브러져 있었다. 강도라도 들었나? 나는 키패드를 눌러 문을 열려고 했지만 문은 이미 열려 있었다. 주방에 들어가니 집기들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사장님에게 부랴부랴 전화를 했다. 하지만 없는 번호라는 안내 음성이 흘러나왔다. 카톡을 보내려고 했지만 이미 탈퇴한 회원이라는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오늘 장사 안 해요?"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폰을 보다가 "글쎄요, 저도 잘"이라고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눈앞에 있는 남자가 초록색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는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뭐지?

 

 

"왜 그래요?"

 

 

멍하니 남자를 보고 있으니 남자가 다시 내게 물었다. 내가 방금 뭘 본 거지? 내가 뭘 상상했나?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눈앞의 남자의 머리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진짜 피는 아니었다. 마치 홀로그램처럼 진짜 피는 아니지만, 내 눈에는 그 남자의 머리에서 피가 흐르는 장면이 똑똑히 보였다. 갑자기 왜.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는 얼버무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내 머리가 어떻게 됐나? 병원에 가봐야 할까? 순간, 내 양팔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사장님이 한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운명을 피하는 방법이 있어요. 다른 사람한테 내 운명을 뒤집어씌우든가....'

 

 

(<운명 도둑> 마침)

 

 

 

운명 도둑 1(공포썰, 괴담, 미스터리 소설)

우리 동네에는 아주 유명한 쌀국숫집이 있었다. 쌀국수도 아주 맛있었지만 그 집은 포춘쿠키가 유명했다. 웬만한 점집보다 잘 맞는 포춘쿠키. 어느 정도로 잘 맛느냐 하면 돈이 들어올 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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